월평동 류짬뽕
내일 오후에 시간연차 썼는데, 실수로 날짜를 안바꿔서 오늘 오후 시간연차가 되버려 가지고... 한참 일하다가 조직도를 봤는데, 내 상태가 휴가로 나오는 거 보고 그제서야 알았다. 이미 결재 다 끝난 거 다시 취소하기도 귀찮기도 하고... 에라이 그냥 일찍 나와서 간만에 류짬뽕으로 향했다.
월평동에 류짬뽕이 생긴지는 얼마 안됐다. 설마 월평동 계룡사옥에 짬뽕집이 또 생길까 싶었는데, 역시 플래그를 세우면 전능하신 신의 개입으로 인해 회수가 되기 마련이라고 또 느낀다. "해치웠나?" 이건 뭐 거의 바이블임.
아, 월평동에 왜 짬뽕집이 또 생길지 몰랐냐면 계룡사옥에만 유명한 짬뽕집이 좀 있어서 그렇다. 안그래도 주차가 개같은 월평동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사시간만 되면 웨이팅 개쩌는 뭐 그런 짬뽕집.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최근에 배가 불러서 점심장사만 하고 저녁장사 따윈 개나 줘버리는 갈마짬뽕이 있고, 그 뒤를 부지런하게 학짬뽕이 추격하면 그들이 문닫은 틈을 타서 24시간 영업을 때려버리는 샹하이와 대왕성이 나란히 있다.
거기서 이제 한 블럭만 건너가면, 술집 거리 쪽으로 동보성과 류짬뽕이 있는 것이지. 저기 나열한 집들 중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곳은 샹하이였다. 석사 시작할 때 같이 교육듣던 동기들하고 중화비빔밥 먹으러 갔던게 계기였지.
각설하고, 류짬뽕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류짬뽕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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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lace.naver.com
작년 가을인가 겨울인가에 생겼던 것 같은데, 처음엔 신성동에 방사부랑 비슷한 외관 때문에 들어갔다가, 이후로 꾸준하니 맛있어서 종종 실패없는 짬뽕이 땡길 때마다 간다. 신기한 게 향미각이랑 뭔가 연이 있는지, 거기서 분가해서 나온건지는 모르겠지만 배달의 민족으로 들어가면 메뉴판이 향미각 메뉴판으로 나온다. 꼬막짬뽕 때문에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여기도 희한한게 음식은 맛있는데,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그런지 갈 때마다 가게가 그냥 텅텅 비어있다. -_-;; 매번 혼자가서 4인용 테이블 중에 아무데나 앉아서 편하게 먹고 온다. 칸막이가 잘 되어 있어서 중국집 답지 않게 프라이빗한 연출이 되어 있다. 근데, 여기가 볶음밥이랑 공기밥이 공짜에 무한리필이라 본인이 짬뽕 좀 친다 싶으면 짬뽕값은 뽕뽑고 오긴 하는데... 메뉴판은 벽에도 있고, 테이블에도 있는데 탕수육 이외의 요리 메뉴가 아예 없고 짬뽕류, 주류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젊은 청년 두분이 동업을 하시는지 한 분이 웍질하고 다른 한 분이 서빙이랑 카운터를 같이 보신다(가끔 여직원분이 서빙하실 때도 있긴 함).

류짬뽕 기본찬. 이거 말고 다른 거 먹고 싶으면 셀프바에서 가져다가 먹으라고 써 있다. 무료로 제공하는 공깃밥도 주방쪽에 있는 셀프바에서 가져다 먹으면 됨.
들어가서 아무데나 앉아 있으면 금새 물하고 단무지 양파를 가져다 주신다. 물은 그냥 시원한 생수다. 쟈스민차 같은 거는 아니고 그냥 벌컥벌컥 들이키면 된다.
오늘은 고기짬뽕과 미니탕수육을 주문했다.
나는 중국집에서 이 시퀀스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문이 주방에 전달되면, 화구에 제트불 들어오는 소리가 후우우우- 하면서 나고 화덕에 웍 문대는 소리가 순서대로 들리는 일련의 과정이 내가 주문한 음식이 재탕이거나 취소된 주문을 묵혀둔게 아니라는 안심감을 준다. 이런 시퀀스로 나온 음식을 먹어보면, 가게에 따라 국물에 간 차이는 좀 나더라도 바로 볶아서 나온 거랑 그렇지 않은거랑은 차원이 다르다.
보통 주방에서 짬뽕하나 볶아서 나오기까지는 5~7분 정도 걸린다. 만약 짬뽕주세요 했는데 저런 시퀀스 없이 2~3분만에 음식이 나온다? 음식맛은 먹어보나마나 한 것이다. 짬뽕 전문점이고 한그릇씩 볶아서 오래걸린다느니, 주문과 동시에 볶기 때문에 짜장면 먹을 때 짬뽕국물 달라고 하지 말라느니 써놓는 집들에서도 저런 경우가 종종 있었지.. 한번 그런 경험을 겪고 나면, 재방문 의사가 싹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안다. 짬뽕은 한번에 2~3인분씩 볶아야 맛있다는 걸. 그래서 만약 혼자 중화요리집을 갔는데 식사시간을 놓쳐서 방문하면 짬뽕 안시키고 짜장면을 시키는 편이긴 한데..

가게 내부. 실내 조명은 노란색에 가까운데 라이트룸 자동 화밸을 썼더니 퍼렇게 잡아버렸다.
출입문 기준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은 이렇게 칸막이 테이블이, 왼쪽은 단체 테이블이 있다.
류짬뽕을 대여섯번 정도 방문했는데, 늘 저런 시퀀스대로 음식이 나오고 음식맛도 약속한 듯 거의 기복없이 맛있어서 정직하게 장사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짬뽕이 나왔다. 신성동에 낭랑도 그렇고 둔산동 라임디쉬도 그렇고, 저런 무늬의 식기류가 유행인가 싶다. 옛날처럼 에나멜 그릇을 쓰는 집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고기 짬뽕. 12,000원.
고기 짬뽕하면 고추잡채에 들어가는 것처럼 돼지고기를 길게 잘라서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소고기 차돌박이를 센 불에 확 볶아서 얹어준다. 국내산인지 호주산인지 미국산인지는 확인을 안해봐서 모르겠다. 벽에 있는 메뉴판을 보면 써있긴 할텐데..
고기가 한 움큼정도 올라가 있어서 면이랑 같이 집어먹어도 다른 건더기 다 먹을 때까지 고기랑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가 있다. 의외로 파채는 그냥 살짝 덮혀 있는 정도...

크... 이거 하려고 탐론 24mm 단렌즈 산거야 이거 하려고!!
저 비계 끝에만 살짝 타있는게 보이려나. 저거 실제로 구워보면 꽤 어렵다. 차돌박이 같이 얇은 고기의 비계 끝 부분만 태울 정도로 바싹 구워내는거. 보통은 저기까지 구워지기 전에 고기를 홀라당 태워먹어서 과자처럼 되기 때문에...
학짬뽕처럼 걸쭉할 정도로 찐한 국물은 아니지만, 여기도 국물이 꽤 진한 편이다. 그리고 바로 볶아서 내보내서 그런지 흔히 말하는 불향이 국물 전체에 잘 배어있다. 냄새만 맡으면서 사진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몇 분 지나니 미니 탕수육이 나왔다.


탕수육은 당연히 부먹이건만... 언제부터 따로따로 나오게 되었는지.... 하여간 그놈의 찍먹파들은 사천탕수육도 찍먹으로 달라고 할 놈들이라 같이 중국집 가면 안됨. 탕수육의 식감은 원래 겉바속촉으로 쳐먹는게 아니라 바싹한 튀김옷이 점점 소스에 눌어가면서 부드럽게 변해가는 맛으로 먹는 것이건만.. 와인, 커피, 일부 맥주들을 블렌딩해서 먹듯이 얘네도 그렇게 먹는 것이다.

짧고, 굵게, 정갈하게.
음.. 여튼 맛있게 잘 먹고 왔다. 아직도 트름하면 속에서 불향이 나서 기분이 좋구만.. 중식 만세다.

테라스도 있어서 웨티이하거나 사람 없을 때 믹스커피로 식후땡하기도 좋다.

테라스 반대쪽. 짬뽕집 바로 옆에 양꼬치집인가 마라탕집인가 있다. 신기함.
ps. 내 블로그는 전부 다 내돈내산이다. 후원이고 식사제공이고 나발이고 그런거 없다. 맛있는 집은 맛있다고 쓰고 맛없는 집은 맛없다고 쓴다. 사람 목숨하고 음식은 장난질 치는게 아니다. 돌이킬 수가 없거든.